북청하면 「물장수」,「물장수」하면 교육을 연상하리만큼 예로부터 북청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육향이다.
하루 새 끼의 끼니를 굶어도 자식은 기필코 가르쳐야 한다는 북청인의 기질이야 말로 북청으로 하여금 교육향으로 일컬어지게한 근원적 요인이다.
「수방도가(水房都家)」로 이어지는 숱한 인걸의 배출이라든지, 북청인에 의하여 설립된 수많은 교육기관 등은 그 입증적 고증으로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내려오고 있다.
북청군장학회도 그러한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다만 이 장학회는 월남한 1세들이 지극히 어려운 환경속에서 탄생 했다는 데 그 의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떻든 북청군장학회는 이북 5도 가운데서 군단위로는 가장 먼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효시적 존재로서 모든이의 선망을 받고 있다.
1964년 5월, 제15차 북청군민회 중집회의는 북청군 장학회를 설립하기로 의결하고 같은 해 9월 5일 정관을 심의 통과시켰다.
그러나 당초에는 재원확보도 없었으므로 독지가의 찬조를 얻어 학자금 조달이 극히 어려운 학생 몇명을 골라 매월 적은 금액을 보조해 주는 정도의 미미한 장학사업이었다.
그리하여 제1차년도 (1966)와 제2차년도(1967)에 읍면에서 신청을 받은 학생 가운데서 총 8명을 선발하여 매월 1,000원씩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1968년에는 군지발간 사업, 군민회관 건립 등이 상정되어 재원확보가 시급하여 사실상 장학사업은 일시 중단 되었다.
1974년에 준공된 북청군민회관은 매월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수 있다는 재원을 확보하였으므로 군민회의 운영은 물로 장학사업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하여 1976년 7월 26일에 열린 이사회는 북청군 장학회를 공익법인으로 발족시키기로 하고 북청군민회관을 재산으로 편입하여 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의 설립을 결의 하였다.
1978년 4월 12일부로 문교부장관의 인가를 얻어 4월 17일 등기를 완료한 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 이후 오늘날까지 활발한 장학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1978년 이래 오늘(2019년 10월 현재)까지 연인원 2,225여명에게 총 25억 9천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임원은 이사 15인과 감사 2인을 두고있으며,
기구는 이사회와 사무국을 두고있다. 초창기부터 줄곧 김형목선생이 이사장을 맡아 왔으나 선생이 2003년 7월 20일 작고하여 후임으로 이선준(李善俊) 이사장이 선임되었고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2015년 3월 30일)하여 3대 이사장으로 손동헌 이사장(2015년 5월)이 선임되었고 2021년 4월 사임 후 6월 작고하였고 후임으로 김기권 이사장이 4대 이사장(2021년 4월)으로 선임되었다. 이사회는 장학회의 운영을 관장하는 의결기관이다. 사무국은 국장 1명과 이를 보좌 하는 과장 1명을 두고 있으며,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 및 기타 사무를 집행한다.
재산은 대지 183.6평, 건평 509.6평의 회관건물이 고정 자산 이며, 여기에서 수입되는 임대료는 건물관리를 위한 수익사업과 장학금 지급 및 장학사업을 위한 목적사업에 충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