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서로 이웃하여 연계를 맺어오던 북청사람들은 1947년 6월 29일, 종로에 있는 운현궁에 모여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회장에 고병남(高柄南, 신북청면)을 선출했다. 이 모임에는 조소앙, 백홍균, 이창종 등 많은 저명인사가 내빈 으로 초청되어 군민회의 창립을 격려했다.
초창기(1947~1950), 태동기(1951~1960), 성숙기(1961~1970), 신장기(1971~1980), 발전기(1981~1990), 융성기(1991~2000)를 거쳐오는 동안 50여년을 지나면서 안으로는 흩어진 군민을 한데 모우는 데 진력하였고 밖으로는 북청인의 목소리를 드높여 통일역량을 집약하는 데 이바지했다. 더욱이 6.25가 발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전란을 피하여 남으로 탈주하면서 군민회의 몸집이 급격히 커져갔다.
그간 군민회는 해마다 총회를 열고 이산가족들을 불러 모았으며, 군민회관의 건립 「북청소식」의 창간, 장학회의 설립, 「북청군지」의 편찬 등, 실로 엄청난 업적을 쌓아 명실공히 이북 5도를 통틀어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두들어지고, 가장 알찬 군민회로 부각되었다.
북청군민회는 1947년에 제정한 회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군민의 민주역량을 집결하여 반공통일을 기하며 상호 친선 협조의 정신을 발양하여 군민의 복지향상을 목적(제1조) 으로 하는 군민회는 군민대회, 대의원회,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 및 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의 여러 기관을 두고 있다.
대의원회는 군민회의 최고의결기관이며(제7조), 읍ㆍ면에서 선출된 대의원, 군민회 회장단, 읍ㆍ면민회장 및 군민회 각 부장으로 구성된다. 대의원회는 임기 2년인 회장단을 선출하며, 예산ㆍ결산의 심의, 인준, 회칙의 제정ㆍ개정 등 중요 안건을 처리한다.
중앙집행위원회(중집)는 상집위원과 각 읍ㆍ면민회장으로 구성되며(제12조), 대의원회에서 결의된 사항의 집행(제8조)과 아울러 대의원회 폐쇄기간중 긴급 중요사항의 의결대행 등 집행기능을 수행한다.
상무집행위원회(상집)는 회장ㆍ부회장ㆍ사무국장 및 각 부장 으로 구성되며(제13조), 중집의 결의에 따른 일반회무의 집행 및 각종 회의에 제출할 보고서 및 의안을 작성한다.
군민회의 재정은 주로 회장단에서 기부한 재원을 기금으로 하여 운영해 왔는데 2000년부터 전 군민이 동참한다는 취지 하에 「지로제」를 도입하여 십시일반으로 협찬되는 전 군민의 성금으로 운영되며, 부족분은 임원 및 군내 유지들의 찬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북청군민회관을 건립하기 위한 군민의 요망에 따라 1971년 6월 13일 제21차 군민대회에서 회관 건립을 결의하고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형목 군민회장은 자신의 소유지 가운데서 대지 183평 6홉과 현금 1천만원을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군민들이 회관 건축비를 찬조하여, 그 기금으로 1974년 10월 15일 지하1층, 지상 3층, 연건평 366평 1홉 7작의 회관을 건립하였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7에 세워진 이 회관 건립에 소요된 금액은 51,645,475원이다.
이북5도를 통틀어 군단위로는 처음으로 자체의 회관을 갖게 된 북청사람들은 이 전당을 정점으로 한데 뭉쳐 향토의 보전사업에 이바지 해 왔다. 그런데 1978년 4월 12일부로 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가 인가를 받으면서 이 회관은 장학회의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그리하여 10여년이 지나면서 주변 여건이 달라져 회관 증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기존 건물을 개축하기로 결의하여 1989년 9월 30일 총 공사비 3억여원을 투입하여 지하1층, 지상5층, 연건평 509평 6홉 2작의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완공하였다.